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보 이야기

JT Sung 2004. 3. 21. 00:44

선교지 볼리보를 가려면 트리니다드에서 하루에 단 한번 있는 바쿤행 지프니를 타야 합니다 


새벽 일찍이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나와 트리니다드에 다다르면 주유소 옆에 바쿤가는 지프니엔 이미 산(山)사람들이 짐을 싣느라 시끌벅쩍 합니다. 20여명의 사람들을 마치 닭 싣듯이 때려 싣고 통로와 지프니 지붕 위에는 당근과 감자를 팔아 돈을 만든 산사람들이 빵 라면 등 생필품 등을 가득 싣고 그것도 모자라 지붕 위에도 여나 무명이 올라타고 아완빠이(더 이상 탈 사람 없어요?)를 외치는 콘닥터(차장)를 마지막으로 태운 지프니는 마치 곡예를 하듯 산위로난 험난한 도로를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기 시작 합니다. 한참을 달려도 보이는 건 산뿐, 이 아찔한 낭떠러지 산길을 사람과 짐을 가득 실은 지프니는 헉헉대며 잘도 달립니다 


산 능선을 따라 서너 시간 달려 이제 차도 지치고 사람도 지칠 즈음이면 낭떠러지에 세워진 휴게소에서 한 30분간 쉰다는 콘닥터의 말에 모두들 차에서 내려 기지개 한번 쭈욱 피고 옷에 뭇은 흙먼지 한번 툭툭 털고는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식당에 들려 그나마 먹을 만한 닭 튀김 한쪽과  컵으로 찍은 밥 하나를 바나나 켓찹에 비벼 뚝딱 해치우고 산에서 나는 내티브 커피를 한잔 마실 즘이면 승객들은 다시 아까 자기가 앉았던 그 자리를 찾아 차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지하수로 열받은 엔진을 한동안 식히던 지프니는 이제 국도를 뒤로하고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바쿤으로 접어듭니다. 이제 길은 점점 험악 해지고 점점 비좁아 지는데  구름에 뒤덮인  험난하기 그지 없는 비탈길을 달리다 타이어 한두번 펑크 나는 건 기본, 앞에서 오는 지프니와 마주 치기라도 하면 그 좁은 길을 아슬 아슬 차 두대가 비껴가고 이제 마을이 나오니 갑자기 콘닥터가 바빠지기 시작 합니다. 

동네마다 차를 세우고 아무개에게 주라며 편지를 전하고, 바교에 누가 전한다며 돈도 전하고, 다음 마을에선 짐을 내리고 그러다 시동이 꺼지면  운전사와 콘닥터는 연장도 없이 차 밑에 들어가 철사 줄로  동여매고 뚝딱뚝딱하니 다시 언제 고장 났었냐는 듯 지프니는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며 선교지를 향해 달립니다. 


사람도 점점 줄고 짊도 점점 줄고 산능성이를 깎아 만든 계단식 논밭에 노을이 붉게 물들 즈음 지프니 종점 씨낙밭에 도착하면 더 이상 차는 갈 수 없고 이제 우리도 차에서 내려 행군을 해야 합니다. 100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지나 걸으면서, 그래도 지프니 탈 때가 편했구나 생각하며 땀에 흠뻑 젖은 배낭을 고쳐 맬 즈음 볼리보에 아이들이 우리 오는 것을 알고 강 솔로 만든 횃불을 들고 우르르 마중을 나옵니다. 


시간을 한 50년 되돌려 논 듯한 전기도 없고 가스도 없고 그 흔한 광석 라디오 하나 없는 그저 농사 지어 자급자족 하며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사는 이 곳 볼리보 마을…이 곳에 한 한국 목사님이 오셨을 때의 일입니다. 영어도 한마디 못하시는 이 목사님이 강대상에 인사하러 오르시더니 갑자기 한국말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그 기도는 눈물의 기도가 되어 버렸고 볼리보의 성도들도 하나 둘 강대상 앞으로 나와 엎드려 함께 기도 하기 시작합니다. 한국 목사님은 한국말로 기도하고 성도들은 깐까나이로 기도하고…… 

그런데 이곳에 성령님이 역사 하셨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 합니다. 기도 시작한지 한시간이 넘었고 교회 전체가 눈물바다가 되어 성도들이 모두 펄펄 뛰는 바람에 (교회가 2층 교회임) 강대상 밑에 마루가 우지직~~ 하고 부러지고 말았답니다.그날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고 마루가 무너지도록 펄펄 뛰던 그 때의 은혜 받던 이 이야기는 8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산골짜기에 회자 되고 있습니다. 


지금 BENECO에서 바쿤에 전기 공사가 한창입니다. 바구 브영에 찻길이 열리고 지금은 마살린에 땅차가 산을 깍아 도로를 내고 있습니다. 이 조그만 마을에도 이제 머지 안아 찻길이 생기고 전기가 들어 오겠지요. 이제 이들에게도 “저녁 먹고 예배 드립니다 하던 것을 (시간 개념이 없다는 뜻) 저녁 8시에 예배 드립니다” 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문명이 이곳에 들어 오는 것이 염려스러운 것은 문명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줄 순 있겠지만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문명이 이들의 순수한 믿음을 변질 시키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외로울 때 이들의 친구가 되시고 이들이 아플 때에 이들의 의사가 되시며 이들이 힘들 때에 이들의 위로자가 되시는 주님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이들의 순수한 믿음이 지켜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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